애인과의 일기

2019년 11월 16일 토 오후 1:42


애인은 저녁밥을 먹었다가 위염이 덧나 급하게 집에 갔고, 나는 남은 맥주를 냉장고에 넣어 차게 식혔다. 오늘은 비가 왔고 내 집은 엉망이었고 제대로 끝낸 일도 없었고 또 늦게 잠들겠으나 나는 이렇게 기록한다. 좋은 하루였다.

종종 너와 평행선을 나란히 걷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. 그만큼 우리는 접점이 별로 없으나 엇갈려 갈 길도 적다는 데에 안도했었다.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의 선과 선을 점점 가깝게 붙여가야 한다고, 아니면 어느 지점에선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는 법이라고 나는 복잡하게 생각했지만 너는 너무 쉽게 내 영역으로 건너오곤 그랬다. 서로의 선로가 부딪히지 않게 나아가는 법을 너는 잘 알았다. 그게 좋았다. 그게 고마웠다. 그러므로 오늘 나의 길에는 맑은 날씨도 깨끗함도 바쁘지 않은 것도 없었으나 네가 하나뿐인 가로등지기가 되어줘서, 좋은 하루였다.

애인은 내일 오전에 병원에 가겠다 하였고, 나는 해외에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부치러 우체국에 갈 것이다. 애인이 내일 저녁 공부하러 독서실로 가면 나는 뮤지컬 한 편을 보러 나가야 한다. 그리고 그 중간을 우리는 또 함께할 것이다. 즐거운 일이다.